 스톡홀름올림픽 이후 8년만에 다시 열리게 된 제7회 앤트워프올림픽은 제1차세계대전의 그늘속에서 올림픽 운동을 재건하려는 유럽사회와 발걸음을 같이 했다. 수많은 올림픽 스타들이 경기장을 떠났고, 한편으로는 우수한 선수들이 전쟁에서 참혹하게 사망한 이후로 제7회올림픽은 경기정석이 실망스러웠던 한차례의 올림픽으로 기록됐다. 벨기에는 전쟁이후 경기장시설을 회복할만큼의 자금과 충분한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선수들의 성적은 매우 큰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가지 종목도 기록을 돌파한 것이 없었다.
5000m달리기 경기에서 핀란드의 한 선수는 앞의 선수를 바짝 따르다가 스퍼트단계에서 갑자기 속력을 내며 금메달을 따냈다.
여자 다이빙 경기에서는 열세살난 미국선수가 금메달을 따냈고, 은메달 역시 열세살난 스웨덴의 선수가 따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앤트워프올림픽에서 선수단의 숙박은 앤트워프시내의 학교를 이용했는데 맛좋은 음식이 선수단에 제공되기도 했다.
축구경기는 올림픽대회에서 맨 나중에 진행됐다. 주최국 벨기에와 실력파 체코가 4만여명의 벨기에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결을 펼쳤다. 하지만 선수와 심판원들의 자질이 별로 높지 않았으므로 경기도중 선수들이 심판원들에 대해 강렬한 불만을 나타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체코의 선수들은 퇴장하는것으로 심판원에 대해 항의를 했다. 결과, 체코는 경기참가자격을 취소당했고 금메달은 벨기에가 따냈다.
하지만 벨기에의 축구팬들은 벨기에 축구대표팀이 따낸 금메달에 대해 불만이 많았는데 그들은 경기초반부터 자기팀 선수들에 대해 원망을 표시하며 사기를 저하시켰던 것으로 알려졌다.
제7회올림픽의 경기성적은 매우 실망적이었지만 반면에 오륜기가 처음으로 게양되고 올림픽 선서가 시작되는 등 방면에서 긍정적인 역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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