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한회의 올림픽에서 금메달 네개를 따낸 주부 선수의 이야기를 보내드리겠습니다.
2차세계대전의 상처가 채 치유되지 않은 채 1948년 5륜기가 안개의 도시 런던에서 12년만에 게양됐습니다.
1948년의 런던 올림픽은 그에 앞서 받은 전쟁의 영향으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며 4종목에서만 새로운 세계기록이 산생됐습니다.
새로운 기록이 이렇게 적게 산생된 것은 올림픽 역사에서 보기 드문 일입니다.
그러나 런던 올림픽이 모든 면에서 아주 저조했던 올림픽인것만은 아니였습니다. 서른살의 네델란드 주부선수가 혼자서 네개의 금메달을 따내 올림픽 역사의 빛나는 한페지를 기록했습니다.
금메달 4개를 따낼 당시 코엔이라고 부르는 네델란드 선수는 두 아이의 어머니였습니다.
런던올림픽에 참가하기 전에 벌써 두 아이의 어머니였던 코엔은 런던올림픽 참가를 준비하는 과정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습니다. 비난의 이유는 어머니라는 사람이 하루종일 애들은 돌보지 않고 운동장에서 뛰기만 한다는 것이였습니다. 그러나 코엔은 자녀 양육과 사업 모두를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끝내 가장 빛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당시 코엔은 여자 100미터 결승에서 11초9의 성적으로 우승을 해 심판으로부터 "날아다니는 주부"라 평가받았습니다.
여자 80미터 허들 경기에서는 작은 에피소드도 있었습니다. 지나치게 긴장했던 나머지 코엔이 출발 총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선수들이 모두 출발한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출발했던 그녀는 제일 앞에서 달리던, 열살이나 어린 영국 선수와 거의 동시에 종점을 통과했습니다. 그 당시 규정대로 두 선수가 거의 동시에 종점을 통과했을 경우 우승은 심판이 가르기로 돼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영국 악단이 돌연 영국국가를 주악하기 시작했고 코엔은 우승은 물 건너 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곧 이어 여자 80미터 허들경기의 우승자가 코엔이라는 발표가 나왔습니다. 악단이 영국 국가를 주악했던 것은 다만 경기장에 들어서는 여왕폐하를 환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많이 지친데다가 어머니로서의 본능으로 금메달 두개를 따낸 코엔은 나머지 경기는 포기하고 자녀들 옆에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훈련 코치인 남편은 경기를 계속하라고 설득했습니다.
당시 코엔이 특히 숭배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 네개를 따낸 오웬스였습니다. 남편은 코엔에게 모처럼 기회가 왔는데 한번 시도해 보지 않는다면 아쉽지 않은가고 했습니다.
결국 남편의 충고를 받아들인 코엔은 4인조 100미터 릴레이경기와 200미터 경기에 참가해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코엔의 뛰어난 성적은 많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으며 일부 사람들은 지어 런던 올림픽을 코엔의 올림픽이라고 하면서 코엔을 올림픽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라고 했습니다.
코엔이 귀국한 후 네델란드에서는 특별히 전국에서 하루를 쉬고 성대한 환영식을 했습니다.
특히 사람을 놀래운 것은 다음해 코엔이 세번째 아기를 출산한 것이였습니다. 사실 런던올림픽 참가 당시 코엔은 벌써 셋째를 임신한 몸이였습니다.
1999년 국제 육상연맹이 마로크에서 세기축전을 진행하고 코엔에게 "세기 여 선수"의 영예를 수여한다고 선포했습니다. 선포 당시 행사 현장에는 오래 동안 뜨거운 박수소리가 이어졌습니다.
코엔에 대한 사람들의 인정과 탄복을 충분히 보여주는 대목이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