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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격계의 영원한 스승---왕의부

출처: 중국국제방송
2008-4-1 10:43:00
 

왕의부(王義夫 Wang Yifu)프로필:

         : 1960 12 4

                : 176

                : 85

프로운동종목: 사격

               : 요녕( Liaoning)

        : 청화대학 본과

허해봉(許海峰 Xu Haifeng) 중국팀을 위해 첫번째 금메달을 따냈던1984 로스엔젤레스올림픽, 당시 24살난 왕의부는 단지 동메달에 그치면서 유감을 남겼다.

88서울올림픽 역시 왕의부에게 기쁨의 희열을 갖다주지 못했지만, 1992 바르셀로나올림픽은 결코 왕의부의 피타는 노력을 저버리지 않았다. 1996년애틀란타올림픽과 2000 시드니올림픽에서도 왕의부는 모두 금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하고 은메달에 그쳤지만, 2004 아테네올림픽에서는 남자10m공기소총에서 챔피언에 올랐다. 또한 아테네올림픽은 왕의부에게 있어서 여섯번째로 참가한 올림픽이기도 했다.

왕의부는 열여섯살나던 해에 요녕체육학교에 입학했으며 1977 요녕성 사격팀에 입선되었고, 1994 국가스포츠위원회 사격양궁운동관리센터에 조동되었는데 현재 국가사격팀에서 부코치 , 감독 선수직을 겸하고 있다.

왕의부 회억록:

8년전 애틀란타올림픽에서 은메달밖에 따내지 못했던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죄인"이었다. 귀국하던 , 반겨준것은 와이프와 어린 딸이었는데 어린 딸애는 "아빠, 대단해요" 라고 기뻐하며 은메달에 입을 맞췄다. 그순간, 나는 언젠가 반드시 딸애에게 금메달을 선물하려는 각오를 다지게 됐다.

운동선수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 가운데서 프로운동에 종사할 있는 수명 역시 홀시할 없는 하나의 문제이다. 2000 시드니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고 귀국했을때 많은 사람들이 물었다, 2004 또다시 올림픽 경기장에 나설수 있냐고.

2004 아테네올림픽에서 내가 금메달을 따내자 많은 사람들이 나한테 물었디. 베이징올림픽에는 나설수 있냐고.

나의 대답은 한가지 뿐이다. 조직에서 나를 필요로 하고, 능력이 닿는 반드시 최선을 다하겠다는 .

아테네올림픽 8라운드경기에서 나는 실수로 8.6점을 맞았고, 줄곧 앞서온 우세도 한꺼번에 물거품이 버렸다. 관중들도 모두 숨을 죽이며 나를 바라봤을것이고, 아마 1996년과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을까 우려했을 것이다. 그때 나는 가슴에 달았던 모택동초상화를 그린 빠찌를 만지며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되뇌었다. 빠찌는 지금까지도 나에게 있어서 소중한 물건으로 되고 있다.

이렇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

주요성적:

1982 9회아시안게임 사격종목 공기소총 4

43회세계사격선수권대회 자유권총 5

1984 23 올림픽사격경기 남자자유권총 동메달

1986 10 아시안게임 사격경기 남자자유권총, 남자공기소총 단체우승

1987 전국챔피언컵 남자자유권총 우승, 665점을 성공하며 세계기록 돌파

1990 월드컵 자유권총, 10m공기소총 우승

1991 월드컵 총결승전 공기소총 우승

1992 바르셀로나올림픽 남자공기소총, 자유권총 각각 우승, 준우승

1996 애틀란타올림픽 남자공기소총 준우승

2000 시드니올림픽 남자공기소총 준우승

2001 9회전국운동회 남자공기소총 우승

2004 아테네올림픽 남자10m공기소총 우승

2000 말레이시아 아시아 사격선수권대회에서 공기소총 단체 세계기록 1757점을 돌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