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징(北京)의 북동쪽, 아파트 밀집지역인 왕징(望京). 이곳의 중심가 격인 왕징 신청(新城) 상가 앞은 점심 식사와 쇼핑을 위해 몰려든 한국인과 중국인들로 매일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전주관, 한촌설렁탕, 오대감, 동원참치, 광명수산, 현우항공…. 크고 작은 한국어 간판 50여 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저렴한 한국 국제전화 카드’, ‘한국 돈 환전 가능’이라는 글귀도 곳곳에 눈에 띈다. 물건을 사거나 식사를 하는데 중국어는 필요 없다. 24시간 철야 영업을 하는 한국 식당에, ‘수능 대비 족집게 과외학원’ 까지, 한국에 있는 건 왕징에 다 있다. 야식집과 수퍼마켓은 24시간 배달체제다. 재중(在中) 한국인회에 따르면 왕징에서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 수퍼마켓, 찻집, 미용실 등이 500개가 넘는다. 중국 속의 작은 한국인 셈이다.
왕 징에 한국인이 모여 살기 시작한 것은 1999년부터. 1992년 한적한 교외였던 이곳에 당시로선 최대규모였던 30만 가구의 아파트단지 조성이 시작됐고, 1999년 이곳을 방문한 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가 “주거환경이 좋다”고 칭찬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당시는 외국인 거주 금지 지역이었지만, IMF 여파로 외국인 거주 허가지역인 베이징 중심가 아파트의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한국인들이 이곳으로 대거 이사를 했다.
한식당인 ‘서라벌’ 백금식 사장은 “1999년 무렵엔 외국인 거주 허가지역이 아니었기 때문에 거주 자체가 불법이었다”면서 “수시로 중국 공안이 신분증 검사를 했다”고 회고했다. 2003년 외국인의 거주제한이 풀리고, 고급아파트 단지가 속속 들어서면서 왕징 거주 한국인은 7만 명까지 늘어났다. 요즘 베이징의 택시기사들에게 “왕징으로 가자”고 하면, 바로 “한국인이냐”고 물을 정도다.
중 국 거주 한국인은 현재 약 70만명. 수교 5년만인 1997년 10만명을 돌파한 뒤 2000년 20만, 2005년 50만을 넘어섰고 매년 10만명 이상씩 증가한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거치고 나면 ‘100만명 시대’가 열릴 것으로 재중 한국인회는 전망한다. 현재 베이징(12만명), 칭다오(靑島·10만명), 상하이(上海·6만 5000명), 톈진(天津·5만명) 등 한국인이 1만 명을 넘는 도시만 중국에 14곳이 됐다.
때문에 왕징 말고도 곳곳에 ‘코리아타운’이 생기고 있다. 베이징대와 칭화(淸華)대 등 대학들이 밀집한 베이징 우다오커우(五道口)엔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한국인 3만명이 산다.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시의 시타(西塔)거리는 코리아타운의 ‘원조’격. 조선족 밀집지역이던 이곳에는 1992년부터 한국인 상가가 들어서기 시작, 현재 200여 개가 있다. 한국식 ‘찜질방’이 최초로 상륙한 지역이기도 하다.
한 국 중소기업 3000여 개가 몰려 있는 칭다오시의 청양(城陽)구에는 통신 회사인 중국 롄퉁(聯通·통신회사)이 요금 수납 등 모든 서비스가 한국어로 제공되는 한국인 전용 영업소를 설치했다. 상하이의 구베이(古北), 톈진의 메이장(梅江), 광저우(廣州)의 위안징(遠景)에도 코리아타운이 형성돼있다. 아파트 마다 한국TV 시청을 위한 위성안테나가 달려있고, 아파트 분양 때는 한국어 안내책자와 한국어 상담직원들이 배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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